에디터 매거진

마음이 가는 길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손장원 작가 인터뷰


1학년 초보 선수들을 격려하는 다래 /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스포츠 만화인데 승패를 다루지 않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도, 뼈아픈 실책과 눈부신 성장도 보이질 않습니다. 사실 와글와글 모여있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주인공을 찾기조차 어렵습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는 손장원 작가님의 소녀 축구 만화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입니다. 

손장원 작가님은 만화 '달이 내린 산기슭' 완결 이후, '바다빵' '꿀' 등 여러 단편과 함께 '따뜻한 별의 파나'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하늘 너머' 등 다양한 연재 기획 작품을 공개하셨는데요. 작가님만의 '마음 가는 만화'들이 표현되는 과정과, 작가님의 작품에 '나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까지. 지금 포스타입 작가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아래 인터뷰는 손장원 작가님의 작품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따뜻한 별의 파나'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작가님의 포스타입 '장원 만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OSTYPE (이하 P) :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포스타입 이용자 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손장원 작가 (이하 A) : 안녕하세요, 손장원입니다. 이름 외에 딱히 저를 소개할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네요. 완결을 낸 만화로는 '달이 내린 산기슭'이라는 작품을 했었습니다.


P : 작가님께선 만화가이자 지질학을 연구한 박사님이시기도 한데요, 첫 작품 '달이 내린 산기슭'이 작가님의 전공과 관련이 깊은 만큼 이전 인터뷰에서도 질문을 많이 받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A : '달이 내린 산기슭'이라는 작품은 제 전공과 관련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사실 상관이 없는 이야기겠네요. 원래 첫 계약 작품으로 기획했던 건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그 작품은 안 된다'라고 하더라고요. 제 이력이 특이하다 보니까 그걸 살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시작한 게 '달이 내린 산기슭'입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공부를 했나'라는 질문에) 매번 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표현이 조금씩 달리 되었던 것 같네요.  


P :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작가님의 꿈은 어렸을 때부터 확고하게 '만화가'이셨다고요.

A : 어렸을 때부터 연습장에 만화를 그렸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본격적으로 직업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만화라기보다는 대충 싸우고 모험하는 몇 페이지짜리 그림이 전부였어요. 만화를 만화같이 그리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동아리를 만들면서부터예요. 친구들이랑 회지를 제작하면서 짧은 서사나 독창성을 조금씩 갖춘 작품을 하게 됐는데, 동아리 회지라는 게 어디까지나 제한된 독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 정도에 그쳤죠.

'만화가로서 어떤 작품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본격적으로 상업 작품을 시작한 이후가 되겠네요. 처음엔 들떠서 좋아하는 요소를 이것저것 때려 박은 기획을 했는데, 출판사 측에서 요구하는 조건들과 맞지 않았어요. 경력이 생기면 차기작부터는 조금 더 하고 싶은 만화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도 생각처럼 진행이 되지 않더라고요.


P : 포스타입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작가님이 포스타입에 창작물을 올렸다면서 공유한 링크를 봤어요. 그때 '아 이런 곳이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고, 작품을 올려두기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작품을 게시판 형식의 커뮤니티 서비스나 포털에서 운영하는 오픈 연재 공간에 주로 올렸는데, 아무래도 작가 개인의 포트폴리오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거든요. 다시 찾아보기도 힘들고, 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나버리기도 하고요. 제 작품을 모아두는 저만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SNS는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트위터(@jangwon_)를 하고 있지만 아직 어렵기도 하고, 여기도 작품을 지속적으로 올릴 만한 공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포스타입을 만들게 됐습니다. 혼자 살길을 찾아야겠다 싶었던 거죠.

외부 미팅이 있거나 업무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어디 가서 뭘 검색하면 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파일을 다 보낼 수도 없어서 곤란했는데 이젠 포스타입에 들어가면 제가 그동안 어떤 작품을 했는지, 한 번에 모아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P : 포스타입 메인을 통해 소개됐던 '따뜻한 별의 파나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여객 비행선의 조종사 파나가 인공지능 로봇 승객 '귤상자'와 함께 겪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인데, 별도 시리즈로 공개하신 외전을 보고 그보다 더 깊은 갈등과 넓은 배경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됐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A : '따뜻한 별의 파나'는 원래 초장편 기획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본편에도 얼핏 지구권과 바이오 회사, 본사, 독립운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정확하게는 침수된 지구를 뒤로하고 화성을 테라포밍 중인 상황입니다. 1부와 2부는 제약이 많은 미래 세계의 지구권을 중심으로, 3부는 극단적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화성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이었죠. 하나의 작품으로 담아내기에는 워낙 크고 복잡한 이야기라 세계관을 설명하는 만화를 따로 그리려고도 생각을 했었어요. 작품으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이렇게 말로만 하려고 하니까 민망하네요.

친절한 여객 비행사에서 '행성 전설, 핑크빛 배달부'가 되어 있는 파나 / 유린기


P : 고도로 기술력이 발달하고, 현재와 다른 질서를 가진 SF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윤리관이 전복되는 장면도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반면 파나에선 추격신 등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사망자가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A : 파나의 세계관 자체가 의료 기술이 무척 뛰어나기도 하고 여러 설정 상 죽을 일이 거의 없다는 전제가 있어요. 그만큼 죽음에 이벤트성이 있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듯이 인간형 전투기를 타고 죽을 만큼 싸우기도 하고요. 파나의 외전인 '유린기'에서는 앞뒤로 많은 인원이 죽는데, 연출 특성상 누가 죽었다는 느낌을 독자분들께서 받기는 힘들 것 같네요. 

작품에 캐릭터가 등장한 이상, 살아있는 것이 기본 상태니까 '어설프게 죽이느니 그대로 살리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죽음처럼 굵고 강한 스토리에 약하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엄청나게 아끼는 캐릭터를 잘 키워서 모든 독자들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올 만한 그런 죽음을 다뤄보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장편이 아닌 이상 그런 서사를 구축하기는 어렵죠. 단편에서 죽음을 다루면 죽음 자체가 작품의 테마가 되어 버리는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캐릭터를) 죽이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트루엘 박사를 추격하는 이들을 살려 보내는 디모 / 따뜻한 별의 파나 1-8


P : 독자분들께서 '작가님의 만화에는 악역이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하신 걸 본 적이 있어요. 포스타입에 공개해주신 작품에도 소위 말하는 '절대 악'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하게 비치는 캐릭터도 완전히 선하다기 보다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캐릭터로 보여요. 특출 나게 정의롭거나 부도덕한 인물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납득 가는 인물이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결정을 해나가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캐릭터를 만들 때 특별히 염두에 두시는 부분이 있나요?

A : 제가 나쁜 사람을 잘 못 그려요. 나쁜 사람이 확실하게 나빠야 맞서는 주인공에게도 더 정당성이 생기고 이기는 맛도 있는데 나쁜 사람의 나쁜 행위 자체도 납득은 가야 하니까요. 좋은 사람은 적당히 좋아도 '좋은 사람'일 수 있는데, 나쁜 사람의 기준치는 좀 더 높은 것 같아요. 허접하게 나쁘면 그냥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요. 

작품을 할 때 캐릭터에 심하게 이입하는 편인데, 이유도 서사도 없이 나쁜 사람이니까 무작정 나쁜 짓을 하는 건 도무지 마음에 차질 않더라고요. '따뜻한 별의 파나' 첫 에피소드를 그릴 때도 트루엘 박사를 쫓아오는 상대 세력이 첫 대립군으로 등장하는 만큼 멋진 악역을 만들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요. 미발표 작품 중에 악역이 등장하는 것도 있는데,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나쁘다가 주인공에게 당하는 역할이라 '이건 공개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작품에 악역이 나오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원하는 편에 가깝지만 이것 역시 실력 부족이라고 봐야겠죠. 부숴야 할 목표가 크고 대단할수록 감동도 커지는 법인데 소소하고 헐렁한 작품만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선한 캐릭터도 마찬가지인게, 제 작품에서 어떤 인물이 특별히 선한 것 같진 않아요.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선으로 치환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선이라기보다 중립이나 기본으로 분류돼야 하는 것들이죠. 누군가를 돕는 행위도 그냥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지, 특별히 남들보다 선하기 때문은 아니고요. 작품 안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을 언급하기도 해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유나 정당성을 찾으려니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얘가 뭘 했다고 주인공이 구해주냐'라고 묻는데, '상식과 여력이 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게 제 답이니까요. 계약 작품은 '그런 이유만으론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P : 뛰어난 기술과 무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도구가 되지 않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꿀'에선 전쟁 중인 두 진영이 선물을 교환하면서 휴전을 맺고, '바다빵'에선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신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싸워서 이기는 대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죠. 갈등 상황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A : '꿀' 같은 경우는 1차 세계대전 중 '크리스마스 정전(영국과 독일이 이르프에서 맺은 정전)'을 모티프로 차용해서 따왔으니 제가 독창적으로 생각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아무래도 공개한 작품들이 대부분 단편이었고, 짧은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끝내야 하다 보니 갈등 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엉뚱한 방식으로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바다빵'처럼 신적인 존재가 넙죽 말을 들어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요. 제대로 된 갈등과 극적인 해결보다는 적당한 갈등과 적당한 해결이 주를 이뤘던 것 같네요.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과 대결하려는 옥분을 말리는 ‘신' / 바다빵


P : 그렇다면 언젠가는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갈등이 고조된 채로 끝나버리는 작가님의 작품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A : 전 그리면서 작품에 영향을 심하게 받는 편이라서요. 독자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의도치 않게 힘들어하는 경우는 생길 수 있겠지만, 작업하면서 스스로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은 그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어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던데 말이에요(웃음).


P : 작가님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니 독자분들이 왜 손장원 작가님의 작품을 '힐링이 된다'라고 표현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감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사실 작품은 보는 사람 마음인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야 어떻든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아주시면 작가로서 당연히 좋은 일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감상이라고 생각합니다.


P : 포스타입에서 가장 활발히 연재 중이신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A : 축구는 꽤 옛날부터 생각해왔던 소재입니다. 왜 그런 말이 있죠. '만화가는 누구나 가슴속에 스포츠물 하나는 가지고 있다'. 저에겐 그게 축구였던 것 같아요. 사실 출판사에 '여자 축구 만화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기겁을 하면서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최근까지도 '이 소재를 정말 만화로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 두 페이지 분량의 개그 만화라는 틀과 잘 맞아떨어질 것 같아 시도하게 됐습니다. 작가인 저도 최대한 편하게 그리고, 보는 사람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계약 작품으로는 어려워도 제가 혼자 작업할 때, 쉴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계속 그릴 수 있는 만화인 것 같아요.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크림고 축구부 포지션


P : 시리즈 소개란에 "노력과 경쟁과 승패가 갈리는 고통 없이 편안하고 평화롭게 즐길 수 있는 일상 속의 스포츠를 통해 다 같이 사이좋게 행복하기를"이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스포츠물의 상징과도 같은 경쟁과 승패가 없는 축구 만화를 생각하신 계기는 무엇일까요?

A : '스포츠물이라도 새로운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기존 작품을 보면서 '아 내가 하면 좀 이렇게 만들고 싶다'라든가 '이건 좀 안 이랬으면 좋겠는데'라는 요소들을 모아서 만들다 보니까 그런 표현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력을 통해 어떤 결과를 쟁취하는 경기 중심의 줄거리보다는 그걸 소재 삼아 웃고 즐기는 내용이 되었고요. 흔히 '클리셰 부수기'라고 하는 것을 의도하진 않았지만, 출발 지점엔 분명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P : 11명이 함께하는 단체 스포츠인만큼 만화에도 대인원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성장 서사가 눈에 띄는 기존 스포츠물과 다르게 '누가 주인공이다'라고 특정하기가 어려울 만큼 모든 캐릭터에 분량이 고루 배분되어있는 것 같아요.

A : 앞서 말했던 '좀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은' 부분들과 연결되는 이야깁니다. 축구는 11명이 한 팀을 이루는 스포츠인데 만화를 보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잘 안 나오는 캐릭터들이 많더라고요. 주인공이 실력을 인정받아서 어디 대표로 뽑혀 나가면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하던 동네 친구들과 순식간에 위치가 달라져버리기도 하고요.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캐릭터가 보이면 '이건 단체 종목인데' '쟤도 열심히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까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폭넓은 독자를 끌 수 있겠다는 기대로 시작한 작품은 아니지만, 정말 스포츠물로서의 흥행 포인트는 최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등장인물이 많기도 하고 가볍게 시작한 작품인 만큼 처음엔 '옷도 다 똑같이 입히고 상반신 위주로만 연출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채색을 하고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자꾸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이 만화에서 축구는 많이 안 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발까지 그리고 있어요. 하하. 모든 캐릭터한테 어느 정도 애정이 있고, 결국은 좋아하는 애들을 그리는 것이니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작가로서는 작품이 잘 안 되는 게 고통이죠. 

사실 요소요소를 따져보면 그럴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걸 재밌어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비주류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스포츠물에서 기대되는 부분은 다 배반했고, 개그에 집중하기엔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상업적으로 흥행할만한 요소가 있지도 않고. 주변의 평이 너무 안 좋기도 하고요. '아무도 안 좋아하는 작품을 대체 왜 그리냐'라는 소릴 들으면서도 제가 좋아서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주연급 채색으로 전환된 1학년 서니 / 가끔은 축구도 하는걸! 5화


P :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면 이렇게 만들겠다'는 부분들은 창작자로서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기보다는 잘하지 못한다고 봐야겠죠. 개인 만화가가 계약 작품을 해볼 수 있을 만한 거의 모든 출판사와 미팅을 해봤고, 제가 하고 싶었던 작품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어요. '이런 장르에선 이런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든가 '상업적으로 잘 되려면 이런 요소들을 넣어보라'라는 조언을 듣고 노력해봤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았죠. 그리기 싫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시도해 봤지만 택도 없었다'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P : SF, 스포츠, 자연 드라마(?), 이세계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해오셨는데요, 창작의 아이디어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A : 특별히 어디서 얻으려고 하지 않고 살다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리는 편이에요.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작품에 적용이 되겠다 싶으면 이야기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계기가 어느 정도 구체적이었던 건 '하늘 너머'라는 작품인데요. 3년 전 개천절날이었는데, 개천절이 '하늘이 열린 날(開天節)'이라는 뜻이잖아요. '하늘이 열리려면 먼저 닫혀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래서 닫힌 하늘(돔으로 덮인 서울)을 그리게 됐어요. '하늘 너머'가 비교적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 작품이라면, 보통은 '로봇을 그리고 싶다!' '격투신을 그리고 싶다!'라는 욕구부터 출발해서 그런 장면이 들어가게끔 작품을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리 천장을 청소 중인 하주 / 하늘 너머 1화


P : 지금 포스타입에 공개되어있는 작가님의 모든 만화는 전 분량이 채색된 작품들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독자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 기성 웹툰 플랫폼들이 모든 작품에 채색을 요구한다는 이유가 제일 크겠습니다. 채색하지 않은 작품은 받아주질 않으니까요.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경험을 했던, 만큼 그때의 버릇이나 습관이 남아있는 걸 수도 있고요. 

외적인 이유도 있지만, 개인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세계관과 줄거리를 짤 때 제 머릿속에서는 이미 채색이 된 상태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색이 작품 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색을 입혀서 생각했으면 칠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사이 어디쯤 '이 정도면 됐다'라고 멈출 만한 타이밍이나 중간 지점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성 단계까지 가지 않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줘도 전달이 잘 될까? (작가로서 독자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 라는 고민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 사실 최근 흑백 만화를 한 번 공개한 적이 있는데, 전체적인 반향을 보면 독자분들이 작품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채색과 흑백의 차이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P : '가끔은 축구도 하는 걸'는 소금중, 설탕중, 크림고가 등장하고, 단편 중에도 '꿀' '슈크림' '유린기' '바다빵' '솜사탕' 등 유독 음식 이름을 사용한 작명이 눈에 띕니다. 음식 이름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 '솜사탕' 같은 경우는 분홍색 에어브러시로 배경을 칠해서 그렇게 지었고, '슈크림'은 작업을 할 당시에 단 음식이 좀 먹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유린기'는 저한테 살을 잘 발라 튀긴 치킨 같은 느낌인데요. 작중에 등장하는 비행기는 처음부터 뜯어버릴 생각이라 통닭을 모티브로 디자인하고, 색이 까마니까 오골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제목이나 이름을 지을 때 제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가 먹을 것이더라고요.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자극으로 받아들일 만한 게 주로 식품이기도 하고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구상 중인 작품 중에도 먹을 것이 제목인 작품이 있어요.


단편 ‘솜사탕'의 배경이 된 ‘행성44호’의 마지막 모습 / 솜사탕


P : 작가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향후 작품 계획을 알 수 있을까요?

A : 지금 포스타입에 공개된 연재 작품 중 '가끔은 축구도 하는 걸'을 제외한 다른 작품을 개인적으로 이어 그릴 계획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중간에 그만둔 작품이 많을수록 쌓여있는 설정과 애정과 미련은 점점 늘어나는데, 그럴수록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외주 작업 위주로 그림을 그리게 되겠지만, 만화를 계속하겠다고 생각하는 만큼 연재 작품 기획을 멈추지는 못할 것 같아요. 외주 프로젝트를 하면서 독립 작품을 준비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손장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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