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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선택

'후르츠 느와르' 영해 작가 인터뷰

그래서 그 파인애플은 또다시 선택을 했지... 이제부터는 그 파인애플의 방식대로 하기로 말이야.

‘후르츠 느와르’ 中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 행동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고, 변하지 않는 현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위해 '어떤 선택'을 내린 파인애플이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불편하고, 무모해 보입니다. 필요 없는 위험과 갈등을 감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연 최선이었을까' '지금의 이 결정을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의문을 가장한 후회가 끊임없이 파인애플을 찾아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한 이 과일의 선택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이야기할 겁니다. '당신의 선택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라고. 아름답고도 비정한 도시 '옵스트 슈타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과일들의 이야기, 만화 '후르츠 느와르'입니다.

이번 포스타입 작가 인터뷰의 주인공은 독특한 소재와 세계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후르츠 느와르'의 영해 작가님입니다. '후르츠 느와르'가 달콤쌉쌀한 마지막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3부의 대장정을 마친 데 이어, 작가님의 생생한 독일 어학연수기를 담은 '앵무새 기숙사 309호' 역시 가장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그간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던 '후르츠 느와르' 1~3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후속작을 통한 작가님의 새로운 도전까지. 지금 포스타입 인터뷰에서 확인해보세요.



아래 인터뷰는 '후르츠 느와르'를 비롯한 영해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해 작가님의 작품은 작가님의 포스타입 블로그 '잔잔한 바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OSTYPE (이하 P) :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포스타입 이용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해 (이하 A) : 안녕하세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영해입니다. '편안할 영(寧)'에 '바다 해(海)'를 써서 '잔잔한 바다'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바다에 돌멩이를 던진다고 해서 풍랑이 일지 않듯이, 깊고 잔잔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담았습니다.


P :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 처음부터 창작을 전업으로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으로 하기도 했고, '내 실력이 그림을 업으로 할 만한가'라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SNS에 올렸던 '후르츠 느와르'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미없어질 때까지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르츠 느와르'가 기대 이상의 반향을 얻기도 했지만, 작품의 세계관 자체에 대한 애정도 컸어요. 처음엔 5개의 단편 에피소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살이 붙어 3부작에 달하는 줄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1부와 2부를 완성하는데 각각 1개월 정도가 걸렸고, 마지막 3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6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어요. 본래 2부에서 끝을 내려고 했는데, 여름이 다가오니 또 과일이 그리고 싶어져서 결국 트릴로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3부를 그리는 데는 3개월 정도 걸렸는데, 새로 연재를 시작한 '앵무새 기숙사'와 병행하느라 유난히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발열이 있는 기계 앞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느라 덥기도 했고요.


트릴로지의 시작. / 후르츠 느와르


P : 여러 서비스 가운데 포스타입을 창작 활동 플랫폼으로 선택해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A : 제가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 아니에요.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어야 따라갈 수 있는데, 포스타입의 콘텐츠 발행이나 운영 기능이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쉽게 느껴졌어요. 여러 블로그를 써 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문턱이 낮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끼는 만큼 독자분들도 그렇게 (쉽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작품을 올렸을 때 접근성도 좋았던 것 같아요. '포스타입에 이런 작품을 업로드 했습니다' 라고 안내를 드리면 서비스 이용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없이도 바로 찾아와서 봐주시기도 하고요.


P : '후르츠 느와르'의 3부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작년 여름부터 올해 초가을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을 것 같아요. '과일이 주인공인 누아르 장르물'이란 발상은 어디에서 출발하게 되었나요?

A: 제가 하와이안 피자(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를 싫어하거든요. 하와이안 피자뿐만 아니라 1부의 사건들과 연루된 다섯 가지 음식(건포도가 든 모카빵, 토마토가 든 햄버거, 올리브가 든 샐러드, 배즙)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입니다. (웃음)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기호가 갈리는 음식을 두고 '대체 왜 먹는지 모르겠다'는 논쟁이 오가곤 하잖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하와이안 피자에 친구를 잃은 파인애플 형사 캐릭터를 생각해봤습니다. 과일로 만들어진 음식이 사실은 '연쇄살과사건'의 현장이라면? 과일의 입장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누아르 장르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불편하지 않은 누아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저 역시 누아르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보는 편이었지만, (범죄 등을 다루는) 소재 특성상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고 나쁨이 갈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 역시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봤지만, 지금은 불편해진 묘사들이 분명히 있고요.


하와이안 피자가 되어버린 파인애플들. / 1부 - Ep.1 파인애플 살과사건


P : 말씀하신 것처럼 제목부터 장르를 명확하게 밝히는 작품임에도 '후르츠 느와르'에서는 이전의 누아르 장르에선 볼 수 없었던 특성들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누아르 작품임을 알게 하는 요소 역시 분명한 것 같아요.

A : 누아르의 클리셰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누가 봐도 누아르답지 않은 연출을 하려고 했어요. 밝고 어두운 면이 혼재하는 도시와 경찰, 소중한 것을 잃고 세상에 염세를 느끼는 주인공과 선하고 희망적인 주변 캐릭터, 배신으로 인한 갈등 같은 것은 누아르 장르의 대표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직업적 특성이나 장르 색을 살리기 위해 버버리 코트나 담배, 선글라스 같은 소품을 활용하기도 했어요. 사실 과일이다 보니 같은 종인 경우에는 그런 소품들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외형을 구별 짓기가 어렵더라고요.

반면 '후르츠 느와르'의 발랄한 색상이나 이미지는 기존의 동일 장르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느낌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자극을 위한 도구로 폭력적인 연출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건을 묘사할 때도 읽는 분들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죠. 다행히 '하와이안 피자가 맛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처받는 분들은 많지 않으실 것 같았어요. (웃음)


P : 등장 과일들의 이름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먹을 때 입안이 아픈 파인애플의 이름은 '텅허트', 무화과 교주는 한국어 이름의 뜻을 살린 '노플라워'. 토마토 반장은 영어 표기를 거꾸로 읽은 '오타못'이죠. 대표적인 관련 상품이나 광고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도 눈에 띕니다. 

A : 각각의 과일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름으로 많이 차용했어요. 독자분들께서는 주인공 텅허트의 이름을 특히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과일의 이미지나 캐릭터의 성격을 정반대로 비틀어 지은 이름도 있었습니다. 갱단에서 일하는 복숭아의 이름을 '스위트'로 짓는다거나, 깐깐하고 얄미운 과일을 '더블스윗(애플망고)'이라고 짓는 식이죠. 잔잔한 웃음 코드를 노렸어요.


후르츠 느와르의 주요 등장 과일들. /후르츠 느와르


P : '후르츠 느와르'를 보면서 가장 공감이 가고 또 의문이 들었던 부분은 도시 '옵스트 슈타트'에 팽배한 부조리였습니다. '어디에서 열리느냐'를 가지고 과일끼리 서로 무시하기도 하고, 같은 종의 과일끼리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어요. '단단하고 큰 과일이 힘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편견을 서슴없이 드러내면서도 가장 작은 과일 중 하나인 체리는 강력한 특공대로, 자두는 두려운 무법자로 묘사되었고요. 오타못 반장은 '진짜 과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진 배제를 당하기도 했죠.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는 듯도 했습니다. 옵스트 슈타트라는 배경을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궁금해요. 

A : '(태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차별이라는 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 많잖아요. 피부색 때문에 사람을 달리 본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죠. 옵스트 슈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에서 열리지 않는다든가, 달지 않다든가, 채소로 분류가 된다든가.... 차별의 이유로 다양한 핑계를 대지만, 이 기준들은 일관되지도 명확하지도 않아요.

다만 옵스트 슈타트의 부조리를 표현할 때, 독자가 등장 과일에 너무 깊이 이입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과일의 경계를 명확히 할수록 이 차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더 잘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의 입장에선 품종이 다른 과일끼리 연애하는 게 전혀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부조리가 얼마나 부당한 이유로 자행되는지 과일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차별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기 위해 같은 과일에게 전혀 다른 성격을 부여하거나, 편견을 역행하는 역할을 주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파인애플이라도 주인공 텅허트는 도시의 부조리에 염세를 느끼는 반면, 친구 아나나스는 그 안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정의롭게 행동하려 노력하죠. 또 크고 달콤한 과일을 선호하는 옵스트 슈타트에서 올리브는 '작고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소외당하지만, 똑같이 작고 구별하기 어려운 체리는 특공대로 활동하며 과일들의 선망을 받아요. 읽는 분들께 '그래서, 과일들을 나누는 그 기준이 대체 뭔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P : 말씀을 듣고 보니 옵스트 슈타트 자체가 많은 고민을 거쳐 나온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조보다는 각각의 과일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 것 같아요. 완전한 해결책이나 '사이다'는 없었지만, 각각의 과일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 : '후르츠 느와르'는 평생 아나나스가 가는 길을 지지하겠다고 결심했던 텅허트가, 친구의 죽음이라는 큰 상실에 놓인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아나나스를 길잡이처럼 따랐던 텅허트지만, 아나나스처럼 늘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파인애플은 될 수 없었어요. 텅허트는 죽은 친구의 그림자를 쫓는 대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주변 과일들을 자신의 삶에서 어떤 위치에 놓을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때로는 옵스트 슈타트의 어두운 면과 타협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요. 아나나스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이죠.

현실적으로 뿌리 깊은 혐오나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가 될지도 감도 안 오네요. 그렇지만 '노력하는 사람을 폄하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자신의 신념을 위해 조금 더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후르츠 느와르'를 통해 결국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이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텅허트에게 삶의 지표가 되어주었던 친구 아나나스. / 2부 - Chapter 5.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P : 에피소드별로 존재하는 각각의 사건이 무화과의 '약속교', 워터멜론의 갱단과 얽혀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텅허트가 맞섰던 것은 각각의 ‘범과(犯果)’라기보다 하나의 큰 적이었던 것 같아요.

A : 무화과의 '약속교'나 워터멜론의 갱단을 궁극적인 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찌보면 그들도 하나의 부분이죠. 각각의 에피소드가 숨겨진 '진짜 사건'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기 보다는, 아무리 사건을 해결해도 (문제의 본질인) 뿌리 깊은 차별이나 혐오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사건 뒤에 또 다른 사건이 나타나는 전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텅허트가 싸웠던 상대는 옵스트 슈타트라는 도시 그 자체였던 거죠.


P : '후르츠 느와르'의 독립 출판과 포스타입 유료 발행을 병행하시면서 다양한 콘텐츠 유통 경험을 쌓으셨을 것 같아요. 작품을 실물로 직접 출판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유료 발행할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A : 원래는 온라인 유료 발행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통이나 보관 문제로) 판매 기간이 정해져있다 보니까, 구매 시기를 놓친 분들이 꾸준히 온라인 유료 발행을 요청해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실물 책보다는 온라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독자분들도 계셨고요. 독자분들의 요청에 따라 포스타입 유료 발행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병행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 발행의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독자분들의 피드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실물 책을 판매할 때도 '잘 봤다'는 말씀을 듣긴 했지만, 판매 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그런 소통도 자연스레 끝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온라인에는 작품이 공개 상태로 남아 있으면 원하는 분들은 언제든 제 작품을 보실 수 있잖아요.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봐주시고, 또 새로운 독자분이 유입되고 그런 게 좋더라고요. 조회 수나 좋아요, 댓글 같은 흔적을 실시간으로 보는 게 창작에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안녕, 앵무새 기숙사 309호!


P : 페이지 뷰로 한 부 단위 완결 분량을 한 번에 공개한 '후르츠 느와르'와 다르게 최근 연재를 시작하신 '앵무새 기숙사 309호(이하 '앵무새 기숙사')'는 스크롤 뷰로 매주 토요일 정기 연재되고 있는데요. 이런 변화를 결심하신 계기가 있나요?

A : '후르츠 느와르'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모바일로 가면서 폰트 크기가 화면에 비해 너무 작게 보이는 등 편집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페이지 만화의 구성과 모바일 웹에 최적화된 화면 구성은 다르니까요. 실물 책 제작에 집중했던 포맷을 온라인 환경에서 좀 더 최적화된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게 첫 번째 과제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연재 방식의 차이인데요. '후르츠 느와르'는 한 부를 완결까지 제작한 다음 공개했지만, '앵무새 기숙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한 화씩 정기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나름 손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올리는 건 정말 다른 차원의 문제더라고요. 제일 힘든 건 매번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예상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작품을 끝까지 연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시험 중인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앵무새 기숙사'는 전체 분량으로 치면 '후르츠 느와르'보다 훨씬 긴 작품이 될 거예요.


P : 작가님이 직접 경험하신 독일 어학연수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캐릭터부터 스토리까지 완전히 창작으로 만들어낸 작품과,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은 작업 과정에서도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A : 항상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배운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잊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기억할 수 있을 만한 것을 남기고 싶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도 등장하는 만큼 작업하면서 '사생활이나 개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묘사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염려되는 부분이고요. 또 작품 도입에서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앵무새 기숙사'를 통해 비치는 모습은 오로지 제가 보는 세계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두려 했어요. 독일에 살면서 '독일은 이런 곳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맞다'라는 식의 참견을 들을 때가 많았는데, 제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앵무새 기숙사'도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본 독일, 그중에서도 보훔이라는 작은 도시, 그 안의 작은 기숙사 방에서 느꼈던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독일에 사는 사람이 몇천만 명이라면 그만큼의 경험이 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P : 10화 '그거 인종차별이야!'에서 차별의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신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이 드러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독자분들이 공감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 : 인종 차별은 독일에 사는 제 친구들도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주제예요.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있기 마련인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가 받는 상처가 줄어들지는 않죠. 앞서 기획의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이때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생각했다'라는 걸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엔 (인종차별이) 불편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외국 생활을 다루면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주제라고도 생각했죠. 제 개인의 경험과 주관으로 그렸기 때문에 작업하면서도 무척 조심스러웠는데, 많은 분이 공감하고 또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0화의 내용 자체는)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한 분 한 분께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0화 이후로 좀 더 작품을 통해 제 생각을 말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차별 후의 고민조차 차별당한 사람의 몫이 되어야 하는 순간들 / 앵무새 기숙사 309호 10화.


P : 작가님의 생각이나 주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15화 '테러리즘과 디즈니랜드'에서도 그런 부분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이슈와 갈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무거운 주제인 만큼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A: 테러리즘에 대한 표현 중 제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비열하다'였어요. 결국 피해를 받는 건 약자인데, 어떤 사상을 내세우든 (테러는) 이기심일 뿐이란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 있었죠. 이 역시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다만 보는 분들이 폭력을 느끼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저 스스로에게도 두려운 경험이었던 만큼 최대한 자제된 표현을 하려 했습니다. 만화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경고문을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제 작품을 보실 때 독자분들이 불필요한 곳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제 가치관이나 사상과 맞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표현 방식에서 혐오나 폭력을 느낀다면 그건 저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요. 늘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인데, 작품을 공개한 지금까지도 그게 제대로 된 방법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네요.


많은 고민을 거쳐 완성된 '테러리즘과 디즈니랜드'. / 앵무새 기숙사 309호 15화.


P : 작가님의 포스타입 프로필 소개(그림 그리고 글 씁니다)에서 알 수 있듯 만화 작품뿐만 아니라 글 작품도 함께 공개하고 계신데요. 다양한 언어를 다루는 '오타쿠의 언어학'이야말로 작가님의 전문성과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A : '오타쿠의 언어학'은 친구가 제안한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쓰게 됐어요. 아무래도 제가 어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영역이기도 하고, 그동안 미뤄둔 책을 읽으면서 교양도 쌓아보자는 목표가 있었죠. '후르츠 느와르'를 시작하면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은 시리즈예요.


P : 작가님의 전공인 독일어에서 시작해 인공어인 '에스페란토'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요정어 '신다린', 스타트렉의 '클링온어' 등을 다루셨는데요. 특히 창작물에 쓰이는 인공어-예술언어는 포스타입 창작자분들께도 무척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언어를 다루게 되실지도 궁금해요.

A : 세계관에서 언어는 정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외계 행성에서 영어를 쓴다든가 하는 장면을 볼 때면 몰입이 깨지기도 하잖아요. 물론 제작비용이나 기간처럼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새로운 언어가 등장할 때면 작품이 더욱더 흥미진진해지기도 하고요. 확실히 인공어는 창작자분들께 관심 있을 법한 주제인 것 같아요.

언어의 세계가 방대한 만큼 쓰고 싶은 소재도 많습니다. 특히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인 '사어'에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는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섞인 '이디시어'나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사용하는 '고려말'을 다뤄보고 싶고요.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사용자)'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P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A : 앞서 '후르츠 느와르' 1부와 2부를 끝낼 때도 그랬지만, 3부를 마치면서도 후기를 쓰지 않았어요. 스탠드 업 코미디 쇼를 마친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딱 내려놓고 가는 것처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그 멋진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러 작품을 하다 보니 확실히 작품 밖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의도로 여기에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작품 안에서는 다할 수 없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뻤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작에 힘이 되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려요. 작품 텀이 긴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댓글로 ‘기다리고 있다'며 다음 편에 대해 물어봐주셨던 분들, 또 '후르츠 느와르'로 저를 알게 되셨지만 '두들두들 다이어리'나 '앵무새 기숙사' 같은 다른 작품까지 보게 되었다고 해주신 분들도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영해🌊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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