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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동행(同行)

장르 만화 스터디 team SIS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장점은 나누며 개선할 점은 고쳐 나갈 수 있다는 것. 좋은 동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 듯 합니다.

외롭고 긴 창작의 여정에 있어서도 동행은 더없이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이 아닐까요. 포스타입에는 이처럼 '창작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작가님이 많이 계신데요. 이번 포스타입 인터뷰의 주인공은 '장르 만화'를 공부하는 네 분의 동료 작가, 팀 SIS입니다. 

팀 SIS는 2017년 4월 '밴드'를 시작으로 'SF' '스포츠' '동양 판타지' 등 장르로 규정되는 소재와 이야기들을 독특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재조립한 단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신규 멤버 영입부터 유료 발행까지. 시즌 2를 맞아 '지속 가능한 창작'을 고민하고 계신 팀 SIS의 이야기를 지금 포스타입 인터뷰에서 확인해보세요. 




아래 인터뷰는 '내 여자친구는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을 비롯한 팀 SIS의 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팀 SIS의 모든 작품은 포스타입 블로그 'SI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OSTYPE (이하 P) : 안녕하세요, 팀 SIS 소속 작가님. 네 분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뵐 수 있어 기쁩니다. 먼저 포스타입 이용자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글 (이하 서) : 안녕하세요. 서글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고, 주로 단편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팀 SIS에는 2017년 말부터 합류했어요. 

잔디롤빵 (이하 잔) : 안녕하세요. 만화를 그리면서 잔디롤빵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윤재안 작가님과 함께 팀 SIS의 원년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재안 (이하 윤) : 앞의 두 분과 다른 소개가 생각나지 않네요. 안녕하세요. 만화를 그리고 있는 윤재안입니다. 2017년 초에 잔디롤빵 작가님과 팀 SIS를 만들었고, 계속해서 함께 활동 중입니다. 

쏘키 (이하 쏘) : 쏘키라는 이름으로 만화 작업을 하고 있고, 올해 초 팀 SIS에 합류해 6월 'BL' 장르부터 작품을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팀 멤버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신기하네요. 


P : 팀 SIS는 포스타입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계신 많은 창작 스터디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팀 중 하나입니다. 팀 SIS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각 작가님의 합류 배경도 궁금합니다. 

서 : 원년 멤버인 윤재안, 잔디롤빵 작가님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저는 한 학년 위의 선배였어요. 학교 다닐 땐 별로 안 친했는데(웃음), 졸업하고 나서 연락을 더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팀 SIS는 두 분의 제안으로 함께하게 되었어요. 소재나 주제보다는 좀 더 큰 구성인 장르를 테마로 하는 스터디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을 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약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또 '대중적으로 뭔가 보여주겠다'는 목표보다는 정말 장르 만화가 좋아서, 재미있어서 꾸준히 서로 독려하며 작품을 내는 팀이라는 것이 좋았어요. SIS와 함께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잔 : SIS를 만들 때쯤 SNS를 중심으로 한창 단편 만화 스터디 붐이 있었어요. 윤재안 작가님과 "우리도 뭔가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신 이육빵오님을 모시고 셋이 함께 팀 SIS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추후에 합류해주신 서글 작가님과 쏘키 작가님은 정말 좋은 만화를 그리는 작가님이셔서 스터디를 함께 해주십사 요청드렸어요. 기존에 활동하던 저나 윤재안 작가님과 작품 면에서도, 인간적인 면에서도 색이 잘 맞는다고 느꼈고요. 2017년부터 지금까지 2년간 팀을 운영해오면서 객원도 받고, 휴재도 하고...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윤 : 대부분의 단편 만화 스터디가 주제를 정해서 기간 내에 각자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팀 SIS는 그것보다 좀 더 확고하게 '장르'라는 틀을 가지고 창작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좀비물'이나 'SF'처럼 특정 장르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클리셰(보편적으로 쓰이는 이야기의 소재나 흐름)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비틀고 고민하는 작업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쏘 : 윤재안 작가님과 비슷한 생각인데, 팀 SIS가 하나의 장르 안에서 각자의 색깔을 입히는 방식이 좋았어요. 예를 들어 '공포물'이라고 하면, 기괴한 이미지라든가 전개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등 독자가 작품에 바라는 것이 명확하잖아요. 작품이 어떤 장르에 속해 있다는 건 독자와 작가 사이에 장르적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 약속이 생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면 작가는 독자의 몰입을 더 쉽게 유도할 수 있고, 독자는 작품에서 기대하는 만족감을 얻어갈 수 있죠. 반면 이 약속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표현으로 반전이나 위트를 줄 수도 있고요. 이런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이 장르 만화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서 함께하게 되었어요. 


P : 팀 SIS는 매 분기마다 새로운 장르를 선정해서 작가님 별로 단편작을 발표하고 계신데요, 주제 장르를 어떻게 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간 해온 14개의 장르 중에서 특별히 독자 반응이 뜨거웠던 장르도 눈에 띄는데, 회의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행되나요? 

윤 : 원고가 끝나면 다 같이 오프라인 회의를 하는데, 그때그때 하고 싶은 장르를 각자 가져와서 이야기를 나눠요. 그 중에서 팀원들의 의견이 모이는 것을 고르는 편입니다. 물론 독자분들이 좋아하실만한 장르인지도 함께 고려합니다. 주제 추천 포스트 댓글에서도 몇 번 가져왔고요. 작품을 발표 전에 미리 선정된 장르를 공지 하는데, 그때 보면 특정 장르를 기다리셨던 독자분들의 반응이 바로 느껴지더라고요. 로맨스BL에 대한 반응이 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잔 : 사실 장르를 정하는 과정은 상당히 즉흥적입니다. 지난 6월 장르인 'BL'도 당시 제가 그쪽에 엄청 꽂혀 있어서 설득한 케이스고요. 독자분께서 댓글로 요청하신 '누아르'는 처음 SIS를 만들 때부터 눈에 계속 밟히는 장르라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윤재안 작가님이 '사이버펑크'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어필하셨는데 지금 잠정 보류 상태거든요. 독자분들 반응이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멤버 추천과 독자 의견 외는 해당 장르가 단편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쏘 : 기획 회의가 각 잡고 '시작합시다' 이렇게 운영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만나서 '마라탕 드실래요?' 하다가 밥 먹으러 가고, 그다음엔 커피 마시러 가서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그런데 다음 장르는 뭐 하실 거예요?' 하고 흘러가듯이 진행되고 있어요. 합류가 늦어서 '기획 회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가볍고 실 없이 진행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P : 많은 플랫폼 가운데서도 포스타입을 팀 SIS의 작품 채널로 선택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잔 : SIS 초창기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포스타입까지 총 3개의 채널을 운영했어요. 보다 집중했던 건 앞서 활동하고 있던 페이스북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SNS의 출력 환경이 만화를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고, 장르별로 작품을 묶거나 이전 작품을 찾아보는 데도 효율적이지 않았어요. 반면 포스타입은 처음엔 아카이빙을 위해 시작했지만, 작품을 장르별로 분류할 수도 있고 독자들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창작 활동에 적합했고요. 특히 작품을 쉽게 유료로 발행하거나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유료 작품 발행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생각처럼 SIS의 작품을 유료로 발행하기 시작했고요. 

쏘 : 플랫폼 갑질이나 에이전시 불공정 계약 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많은 작가들이 더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개인 창작자가 작품을 직접 발행하고 유통하면서, 다양한 수익 모델을 시도를 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가까운 작가님 중 한 분도 정기 후원을 받고 작품을 메일로 발송하는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시거든요. 작가 혼자서도 꾸준히 이익을 창출하는 사례를 지켜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포스타입에는 작가가 직접 작품으로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SIS 역시 포스타입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운영 중이에요. 


팀 SIS의 시즌 2를 알리는 온라인 제작발표회 공지


P :  2018년 3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마지막으로 시즌 1이 종료되고 팀 SIS의 '시즌 2'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 유료화가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재 주기 변경, 신규 작가 가입 등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잔 : 당시 대부분의 팀원이 바빠지는 바람에 SIS 작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상황이었습니다. 작품 간격을 늘리는 대신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고 다짐했었죠. 정기 구독 모델로 계간 잡지를 만들어 발송하는 기획도 있었고요. 사정상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서 팀 멤버 분들께 굉장히 미안했어요. 하지만 시즌 2가 시작된 후에도 멋진 작품들이 나왔고, 사정으로 미뤄졌던 6월 BL 장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 기쁩니다. 한 번 휘청 했다가 다시 궤도로 올라온 것 같아요. 

특히 작품의 유료 전환, 발행은 정말 큰 변화였어요. 처음엔 회의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누가 내 만화를 사서 볼까' 그런 마음이 제일 컸어요. 해보고 난 지금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하면서 가졌던 의문들이 해소되고, 자존감도 높아진 것 같아요.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윤 : SIS 작품 유료 전환의 가장 큰 이유는 동기부여였던 것 같습니다. 2년 넘게 정기적으로 만화를 내면서 (팀 SIS 활동을) 계속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외에도 '구체적이고 강력한 동기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끝에 유료화를 결정하게 됐어요. 유료 전환을 하면서 작품 퀄리티(질)를 좀 더 향상시켜보자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서 : 잔디롤빵 작가님, 윤재안 작가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해요. 독자가 내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는 크고 직접적인 창작의 동기로 작용하니까요. 판매를 시작한 이후로 새롭게 보게 된 데이터들도 있습니다. 특히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이 제일 높은 매출을 내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깊은 의미가 있었어요. 작가에게 있어 매출은 조회수, 좋아요, 댓글 등과는 또 다른 성격의 지표니까요. 어떤 작품의 매출이 제일 높은지, 작품의 어떤 부분이 구매의 요인이 되었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쏘 : 독자의 입장에서 오랜 기간 SIS를 지켜보면서, 작품이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수익 시스템 자체가 팀 SIS가 보다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동력원 중 하나가 되지 않겠냐는 판단도 있었고요. 회의를 통해서 '작품을 더 오래,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다면 그것(유료 발행)도 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됐습니다. 

유료화를 경험한 지금, 저희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개인으로서 유료 작품 발행을 주저하시는 작가분들이 한 번쯤 작품 판매를 시도해보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수익 자체를 성패의 기준으로 두기보다는 작품을 유료로 판매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다음 작품을 이어가는 강제성도 생기고, 스스로 작품 퀄리티에 대한 마지노선을 정하게 되기도 하고요. 판매 경험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수련과 공부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팀 SIS의 유료 발행 공지


P : 팀 SIS ‘장수’와 ‘화합’의 비결,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잔 : 저희는 신의로 묶여있는 사이예요.(웃음) 원고를 기간 내에 제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재를 받는 것도 없고 '꼭 해야돼!'라는 강압적인 분위기도 없습니다. 다만 피치 못하게 작품 제출을 건너뛰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멤버분들께 많이 미안하더라고요. 해보자고 했던 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라든가... 규칙보다는 오히려 그런 마음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서 : 고교 동창, 대학 동기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거점 지역이 서로 멀지 않아서 바쁜 와중에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은 모임이 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멤버가 서로의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쏘 : 저 역시 SIS를 통해 발행되는 작품들을 서로가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멤버 모두가 장르 만화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즐기면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팀 SIS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윤: 저 같은 경우에는 부담을 많이 안 가지고 가려고 해요. 마감 기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각자의 자율에 맡겨 편하고 자유롭게 팀을 운영해온 것이 SIS가 오래 유지되어 온 비결인 것 같습니다. 쏘키님 말씀처럼 멤버의 작품이 좋기 때문에 계속해서 같이 가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P : SIS 안에서 재미있는 시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작년 2월 주제인 '학원물' 장르에서는 멤버 분들이 학교에 모여 '24시간 창작'을 진행하고 후기를 올려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잔 : 그전부터 '24시간 챌린지' 같은 것을 해보자고 했는데, 마침 시기가 잘 맞아서 진행하게 되었어요.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만화 작업을 할까 항상 궁금했거든요. 평소 집에서 작업할 때도 적적해서 행아웃(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을 공유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을 자주 하는 편이고요. 아예 모여서 작업을 하니 진행 과정도 공유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다 같이 하는 분위기니까 집에서 보다 훨씬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손은 그리고 입은 떠드니까 시간도 빨리 가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창작 스터디의 장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기회가 닿으면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 그때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에 또 하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때는 24시간이 아닐 수도 있어요(웃음). 확실히 '학원물' 장르는 다른 달보다 마감이 수월했던 것 같아요. 24시간 동안 갇혀서 작업을 어느 정도 해두고 나니까 학교를 나올 때는 '이제 집에 가서 마무리만 해야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서 : 그때 팀 SIS 멤버 외에도 객원 작가로 겅생님과 토마토모닝님까지 함께 해주셔서 더 재미있었어요. 서로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작업을 하니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손으로는 막 만화를 그리면서 입으로는 이야기도 하고 피자도 먹고. 굉장히 즐거웠어요. 

소 : 그때 '24시간 만화'를 진행했던 장소가 제가 다니는 학교인데, 지금 2주 동안 거기 있다가 나왔거든요. 인터뷰가 끝나고도 다시 학교에 돌아가야 해요. 거기서 매일 24시간 챌린지를 하고 있자니 이제는 학교인지 집인지도 자각이 없어진 것 같고(웃음)... 팀 SIS 작가님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장소만 다른 곳이면 좋겠습니다. 



P : 2017년 4월 '밴드'를 시작으로 총 14개의 장르, 50여 편의 작품이 SIS를 통해 공개됐는데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르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쏘 : BL이란 장르 자체가 낯설지 않았어요. 장르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확실한만큼 '시합' 을 작업할 땐 직접적인 성애적 표현보다 '아, 이래서 BL이구나' 하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연출하려 했습니다. 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알고보니 사랑' 같은 느낌을 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 조영우의 브릿지 머리는 200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헤어 스타일이고, 또 다른 주인공 소년은 스마트폰을 씁니다. 시대에 차이가 있다는 걸 외형적으로 대비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우는 독자들께서 짐작하셨듯 과거에 사망한 아이인데, 처음엔 같이 수영 시합을 하자고 조르다가 소년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내일도 놀자’는 말을 무시하고 가버리죠. 완성을 하고보니 이야기가 너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서 내용 전달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아쉽고, 약간의 부끄러움까지 있는데 다음 주제는 좀 더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과거의 소년' 영우는 물가에서 울고 있는 소년에게 수영 시합을 제안한다. / 시합


서 : 작년 2월 참여했던 '학원물' 장르의 '입시잔혹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입시 미술을 함께하는 두 친구가 주인공인 작품인데, 수민이에 비해 늘 뒤처진 평가를 듣던 민아가 주변의 예상과 다르게 혼자 대학에 합격한 후, 염색을 하고 모두에게 보란듯 등장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싶어서 여러 번 고쳤던 기억이 나요. 

제가 오랜 기간 입시를 해서인지, 학교보다는 학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입시준비생에게 학원은 학교 이상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고요. 함께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겉으로는 사이좋아 보여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경이나 관계의 변화 같은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아무도 끝을 알 수 없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데, 의도대로 작품이 마음에 들게 나와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열등과 질투를 섬세하게 담아낸 '입시잔혹사'


잔 : 2017년 9월 서부극 장르에서 발표한 '최악의 휴일'을 꼽고 싶어요. 다른 작업물들도 애정이 많이 가긴 하지만 작업하면서 '아,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만화라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검볼'이나 '덱스터의 실험실'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즐겨봐서 이런 분위기의 소동극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을 하든 머리로는 항상 유머러스한 요소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개그 만화 자체도 좋고, 진지한데 그 안에 재미 요소가 있는 것도 좋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16p 분량 안에 잘 담은 것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펜선 넣는 작업을 좋아해서 그리는 작업 자체도 즐거웠어요. 


황금 같은 휴일, 사촌 동생을 돌보게 된 엘리자베스는 서부의 무법자가 되어 고양이 납치범 처단에 나선다. / 최악의 휴일


윤 : 로맨스 장르의 'VHS LOVE'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분들께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원래 가볍고 빠른 전개의 작품을 할 때는 콘티를 철저하게 짜지 않고 슥슥 작업하는 편인데, 그 습관이 드라마 중심의 무거운 원고를 할 때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마감이 촉박할 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VHS LOVE’는 그 습관을 깨고 콘티 작업부터 촘촘하게 준비를 해서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고, 무엇보다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명확하게 담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이해하고 닮아가려 노력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씩 있었을 것 같아요. VHS 테이프의 특성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성이나 기획 의도와 소재가 잘 맞아 떨어졌죠. 디지털 파일과 다르게 VHS 테이프는 재생한 위치까지 필름이 감겨서 흔적이 남으니까요. 


공감하기 위한 노력, 다른 말로는 사랑이 아닐까요? / VHS LOVE


P : 스터디를 함께하면서 서로의 작품과 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스타입 이용자께 '이 작품 정말 추천한다!' 하는 SIS 작품 자랑도 부탁드려요. 

서 : 잔디롤빵님의 '가라앉는 악몽'이 너무 좋아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학원 배경 안에서 벌어지는 친구들의 경쟁과 속마음이 정말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화정이가 수영을 더 잘하니까 너부터 구하자고 했어’라는 마지막 대사와 결말도 정말 좋았어요.  직접적이고 단순한 인과 표현인데, 주인공에겐 상황을 돌아서 속마음을 깊게 찌르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재안 작가님 작품 중에는 앞서 말씀하신 ‘VHS LOVE’가 정말 좋았어요. 요즘에도 가끔 새벽에 다시 찾아보는 작품인데요.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도 새벽에 꼭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쏘키 작가님은 이번에 처음 팀 SIS로 작품을 발표하셔서, 작품을 고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입시를 같이 하면서 쏘키 작가님 그림을 많이 봤는데, 작가님의 그림체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이 있고, 인물의 캐릭터를 잡는 방식도 정석적인 표현과 다르게 동글동글한 느낌이라 개성이 돋보이는 작가님이에요. 


2018年 2月 : 학원물 장르 '가라앉는 악몽' / 잔디롤빵


잔 : 저는 윤재안 작가님의 '식인 개구리'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보고 나면 개운한 뒷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플롯이 잘 짜여 있기도 하고, 개구리가 말하는 장면이 너무 웃겨서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작품이 실린 책자가 집에 있는데, 지금도 가끔 찾아보곤 합니다.

서글 작가님은 이번에 발표하신 BL 장르의 'LUSH'가 그림의 느낌이 좋아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았어요. 페이지 만화로 편집하셨는데, 시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빠른 템포가 좋았던 것 같아요. 알차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쏘키 작가님은 평소에 작품을 보면서도 드로잉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여주신 작품 '시합'에서도 그게 잘 보였던 것 같아요. 한국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 만화 '맹꽁이 서당(윤승운 作)'을 좋아했는데, 그런 느낌이 나서 특히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2019年 6月: BL 장르 'LUSH' / 서글


윤 : 서글님의 단편 중에 '혜야'를 좋아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상으로 따지면 '편집'을 정말 잘하시거든요. 잔디롤빵님 말씀처럼 시간순으로 흘러가다 중간에 플래시백(회상 장면) 같은 효과를 잘 사용해서 적은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 같아요. 저였다면 30페이지가 필요한 이야기를 10페이지 안에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혜야'는 서글 작가님의 이런 강점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쏘키님의 '시합'도 정말 좋게 봤어요. 읽는 내내 두 소년의 대화가 아주 귀여워서 계속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또 내용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서, 슬프면서도 귀여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잔디롤빵님 만화 중에서는 SF 장르인 '코스모스'를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사는 인물들이 긴 시간에 걸쳐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어느새 세월이 지나 있는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단 몇 컷으로 쭉쭉 흘러가는데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2019年 6月: BL 장르 '시합' / 쏘키


쏘 : 서글 작가님의 '입시 잔혹사'가 굉장히 관능적이었어요. 성적인 의미의 관능이 아니라 입시의 치열함을 다루는 방법이라든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표현하는 데 농염한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이 친구가 원래도 잘 그리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분위기가 관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윤재안 작가님 작품 중에서는 '할로윈 괴담'을 추천하고 싶어요. 장르적 특색이 짙은 작품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정해진 규칙을 깨는 작품들에 끌리거든요. 이 작품도 공포물이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큰 사건이 없는데도 이야기가 굴러가고 기승전결이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잔디롤빵님 작품 중에는 '내 여자친구는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를 좋아합니다. 좀비가 된 여자친구를 방 안에서 사육(?)하는 내용인데요, 여자친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고생의 이야기가 좋았어요. 잔디롤빵 작가님의 그림체 특유의 귀엽고 예쁘지만 축축한 느낌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졌던 것 같습니다. 귀여워 보이지만  마냥 귀엽지만은 않은 느낌이요.


2017年 10月 : 호러 장르 '할로윈 괴담' / 윤재안


P : 포스타입 이용자분들이 이 추천을 보시면 더욱 풍성하게 팀 SIS의 작품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어 오셨는데, 그간 팀 SIS를 통해 이룬 성과를 짚어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잔 : SIS를 하면서 10개 정도의 단편 만화를 그렸는데, 아쉬운 것도 있고 만족스러운 것도 있어요. 비율을 따지자면 만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쭉 모아놓고 보니 뿌듯한 것도 있고요. 그동안 창작을 하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고, 잘하는 게 뭔지 계속 방황했거든요. SIS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어쩌면 앞으로도 이 방황을 계속해야겠지만, SIS 활동이 지금 제가 가진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윤 : 고등학교 때부터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서 주기적으로 작품을 내는 활동은 SIS가 처음이에요. 많은 분께 계속해서 작품을 공개하면서 독자층이 생기는 경험 자체가 저에게는 무척 소중했습니다. 농담처럼 '믿고 보는' 누구라고 표현해 주시는 댓글을 볼 때마다 굉장히 힘이 되었고 또 감사했어요. 

서 : SIS 활동을 꾸준히 해온 스스로에게 '참 열심히 했네'라고 한마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신없이 지나쳐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어느새 쌓여있는 게 있더라고요. SIS를 통해 공개한 작품을 본 계약 연재 플랫폼에서 좋은 제의를 받기도 했고요. 여전히 제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지만, 이렇게 돌아볼 수 있는 과정이 있으니까 앞으로 창작을 하면서 헤매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쏘 :  졸업을 앞두고 있다보니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SIS 활동을 시작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경험을 해보니 동기 부여도 되고 어느 정도 방향성도 보이는 것 같아요. 앞서 팀 SIS를 통해 꾸준히 창작을 해 온 멤버 작가님들처럼, 저도 시간이 지나 이곳에 작업물이 쌓이면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꾸준히 활동 하면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은지 찾아가고, 앞으로의 창작 기반을 다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 : 개인으로서 또 팀 SIS로서 작품을 발행하시는 동안 정말 많은 독자분들과 만나셨을텐데요. 작가님께 독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윤 : 저는 독자 반향에 무척 집착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팀 SIS 블로그의 모든 포스타입 알림은 제가 다 지우고 있어요. 그만큼 보내주시는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고, 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반향이 작가에게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서 : 윤재안 작가님이 매번 알림을 다 지운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도 못지않게 남겨 주시는 댓글 다 보고 있거든요. 작품을 찾아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저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말씀드리자면, 팀 SIS 멤버 모두 모두 정말 '믿고 볼만한'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잔 : 저 역시 독자분들의 모든 반응, 아주 좋아합니다. 구매뿐만 아니라 좋아요, 댓글 어떤 방식이든 표현해주시는 모든 반응이 작가에게는 정말 큰 힘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작품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쏘 : 사실 저는 독자 반응을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었어요. 혹시라도 안 좋은 이야기를 보게 되면 멘탈이 흔들릴 것 같아서요. 정말정말 궁금하면 일부러 몇 달 전에 올려둔 작품에 대한 것들만 찾아보고요. (초연하려고 해도) 그렇게 찾아본 반응이 긍정적이면 언제나 행복하고 좋더라고요. 감상은 독자분들의 영역이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P : 팀 SIS 소속 작가님의 추후 활동이 궁금합니다. 준비 중인 작품이나 새로운 창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서 : SNS 등을 통해 아는 분도 계실 텐데, 8월 중 '짝사랑 동아리'라는 작품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관심 있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잔 : 이제까지는 단편 위주의 창작을 많이 했는데 요즘 장편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준비 중입니다. 학원물이고, 지금은 스토리를 짜는 단계예요. 

윤 : '가상 밴드 화보집'이라는 콘셉트로 7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참여합니다. 열심히 달리는 중이에요. 많이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인터뷰가 페어 후에 나가나요? 그렇다면 서일페에 와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잘 쉬고 있습니다. 

쏘 : 졸업 작품으로 만화를 준비 중이에요. 여드름 치료를 위해 의료용 거머리를 사서 얼굴에 붙이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제목은 '뽀뽀쪽 피뚝뚝' 입니다. 애정을 쏟으면서 열심히 작업 중이고요. 완성된 작품은 내년 1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시회를 통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팀 SIS 네 분의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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